아이들이 어릴 때는 빨리 키워서 같이 운동을 하고 싶었다. 야구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산에 함께 오르는 상상을 하며 흐뭇해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되도록 천천히 자라면 좋겠다. 부모가 나이 드는 게 서글프기도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반짝거리는 아이들이 너무도 예쁘기 때문이다.
둘째는 제가 궁금한 것은 뭐든 다 아는 형을 부러워했다. 평생 형이 될 수 없는 자기의 운명도 모르고 언젠가는 형이 될 거라는 희망을 홀로 가졌다. 다섯 살이 되는 생일날 혼자 구석에서 좋아하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이제 이 년만 지나면 자기도 형으로 변신한다는 것이다. 일곱 살이던 큰아이가 그 희망을 단번에 깨뜨렸다.
“아니거든! 이 년 뒤에도 너는 너거든! 그리고 이 년 뒤에 나는 아홉 살이거든!”
“아닌데? 아닌데?”
둘째가 울먹이며 나를 바라봤지만 편을 들어 줄 수가 없었다. 삼십 년 뒤에는 아빠로 변신할 거라고 믿는 아이의 꿈을 지켜 줄 수 없어 미안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아이들은 사이가 좋았다. 둘째가 형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하자 첫째는 한참 고민하다가 그 청혼을 받아들였다. “이 결혼, 나는 반댈세!”라고 외치고 싶었는데 사랑의 장애물은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신부 드레스를 누가 입느냐로 둘이 다투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은 양보와 인내라는 걸 아이들은 몰랐다. 서로 여자 옷을 입지 않겠다며 팽팽하게 맞선 끝에 결국 파혼이 되었다.
몇 년 전에 결혼이 깨졌지만 두 아이는 여전히 한방을 쓰며 킬킬댄다. 그런데 한 달 뒤면 큰애가 중학교에 들어간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탈피하여 방을 따로 쓸 때가 된 것이다. 쓸쓸할 둘째가 딱하기도 하고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인생의 가장 좋은 부분을 살고 있다고 여기는 이유는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부모는 젊고 집안에는 큰 걱정이 없어서다. 이럴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알기에 더 값진 나날이다.
동화를 써서 좋은 점이 여기 있다. 몸이 늙어도 마음은 피터 팬이라는 것. 나이가 들어도 언제나 어린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내 아이들이 죽순처럼 쑥쑥 자라도 걱정 없다. 나와 놀아 줄 새로운 아이들이 세상 어디선가 새싹처럼 태어나고 있을 테니.

김남중 님 | 동화 작가

김남중 님은 2004년 《기찻길 옆 동네》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자존심》으로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 《나는 바람이다1.2》, 《불량한 자전거 여행》, 《새나라의 어린이》 등이 있습니다.

출처 좋은생각 홈페이지

http://www.positive.co.kr/good/71365_48_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