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무렵, 방학이라 고향에 갔던 여자 친구가 놀러 온다고 해서 나는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꽃단장을 하려고 집을 향해 신 나게 오토바이를 달릴 때였다.
승합차 한 대가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서 불법 유턴을 했다. 브레이크를 잡을 새도 없이 승합차 옆구리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멀리서 쾅! 소리가 들렸고 헬멧을 쓰지 않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팔월 한낮 아스팔트는 뜨거웠다. 내 이마에서는 그보다 더 뜨거운 것이 흐르고 있었다. 놀란 운전자 아저씨는 차에서 내리지를 못했다. 내가 비틀비틀 일어나자 겨우 차 밖으로 나와 피를 닦을 걸레 같은 걸 건넸다.
내 머릿속에는 기차를 타고 오고 있을 여자 친구밖에 없었다. 절대 바람 맞혀서는 안 된다. 병원으로 가자는 걸 거절하고 전화번호를 받은 다음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피투성이 옷을 갈아입었지만 주먹만큼 부어오른 이마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다. 어지럽기도 하고 온몸이 욱신거려서 만나기로 약속한 커피숍에 전화를 걸어 여자 친구에게 집으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
여자 친구는 내내 울먹이다가 돌아갔고 나는 비틀대며 약국에 갔다. 약사는 당장 병원으로 가라 했지만 나는 어머니 몰래 사고를 수습하고 싶었다. 밤이 되자 약사가 말한 대로 친구들을 불렀다. 친구들은 술을 마시며 놀다가 삼십 분마다 내 허벅지를 이쑤시개로 찔렀다. 아무 감각이 없으면 당장 응급실로 가야 한다는 게 약사의 조언이었다.
내 비명이 높을수록 친구들 웃음은 커졌다. 밤늦게 어머니가 이층 내 방으로 올라오고 나서야 상황이 정리되었다.
급히 응급실로 실려 가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간호사가 내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웃다가 야단을 맞았는데 의사 역시 사진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결국 나도 웃었다. 웃을수록 머리가 아팠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얼굴이 네모나면 두개골도 네모나다는 걸 처음 확인했다.
사고 정황에 비해 큰 후유증 없이 끝나 다행인데 돌이켜 보면 아찔하다. 몇 년 뒤 유라시아 횡단을 하려면 소형 2종 면허를 따야 하는데 아내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이다. 내 아이가 오토바이를 타겠다면 나 역시 말릴 게 분명한데 말이다. 여섯 달 동안 여행을 다녀와서 바로 팔아 버리겠다고 하면 통할까?

김남중 님 | 동화 작가

김남중 님은 2004년 《기찻길 옆 동네》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자존심》으로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 《나는 바람이다1.2》, 《불량한 자전거 여행》, 《새나라의 어린이》 등이 있습니다.

출처 좋은생각 홈페이지

http://www.positive.co.kr/good/71364_48_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