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아이들은 아빠를 닮아 달리기가 느리다. 그러면서도 나와 달리 운동회를 좋아한다. 나는 운동회가 싫었다. 출발선에 서기만 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출발 신호가 울리기까지 몇 초가 몇 분이나 되는 것 같았다 남들은 휙휙 달려가는데 나만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며 일등을 빛나게 해 주는 배경이 되었다. 손등에 도장도 찍지 못하고, 공책도 연필도 타지 못하고, 구경꾼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배 나온 아이가 나였다.
가장 싫어하는 운동이 달리기였는데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스스로 운동장을 찾아가 달리기를 하게 되었다. 국가 대표처럼 진지하게 계획을 짜서 훈련을 하는 이유가 있다.
몇 년 전, 큰아이의 첫 운동회 때였다. 아빠들이 별로 없는 터라 학부모 이어달리기 주자를 하라며 등을 떠밀렸다. 완강하게 거절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보내 내 손을 끌고 가게 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심장이 뛰는 자리다. 그나마 술 담배를 몇 년 전에 끊었던 게 도움이 되었다. 평생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이어달리기가 정신없이 끝나자 상을 두 개나 받았다. 오이 비누 하나, 그리고 아빠를 향해 달려온 아이의 한마디.
“진짜 빠르다! 나도 크면 아빠처럼 달릴 수 있을까요?”
슈퍼맨을 보듯 반짝이던 눈동자가 지금도 선하다.
둘째 아이까지 초등학생이 되자 꼼짝 못하고 해마다 이어달리기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운동회 며칠 전부터 혼자 운동장을 달리고 운동화를 새로 산다.
아빠 덕분에 이겼다고 팔짝팔짝 뛰는 두 아이의 눈동자 때문이다. 너희도 아빠처럼 빨라질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싶기 때문이다.
이번 운동회에서는 넘어져서 무릎을 다쳤다. 그래도 또 이겼다. 이제 이 년만 더 달리면 된다.


김남중 님 | 동화 작가

김남중 님은 2004년 《기찻길 옆 동네》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자존심》으로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 《나는 바람이다1.2》, 《불량한 자전거 여행》, 《새나라의 어린이》 등이 있습니다.

출처 좋은생각 홈페이지

http://www.positive.co.kr/good/71340_48_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