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중의 반짝반짝 31. 수학 포기자
휴게실 같은 곳에 혼자 있으면 수학 교육 방송을 볼 때가 있다. 우리말도 알고 숫자도 알겠는데 그 둘이 조합되는 순간 외계어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의미가 생겨난다.
저걸 알아듣는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
미지의 영역을 술술 설명하는 강사를 보면 사람의 능력은 무한하다는 감동마저 생긴다.
내가 수학 체질이 아니란 걸 깨달은 건 중학교 일 학년 때였다. 학기 초에는 열심히 해 보려 했는데 어느 순간 맥이 끊어지면서 내가 이걸 왜 고민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마냥 놀 수는 없어서 나름대로 수학 시간을 세계 고전 읽기 시간으로 정했고 대학 입학 때까지 그 약속을 꾸준히 지켰다.
수학을 잃은 건지, 고전을 얻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대학에서는 수학 관련 과목이 아예 없었고 회사에서는 엑셀 프로그램이 필요한 계산을 해 주니 수학의 필요성을 못 느꼈는데 아이들이 점점 자라니 과거의 선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직은 아이들에게 수학 포기자인 아빠의 흑역사를 고백하지 못했다. 그렇잖아도 아이들이 수학 숙제를 들고 오면 슬그머니 엄마에게 보내고,
아이들 수학 점수가 낮아도 내 탓이다 싶어 아내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런데 초등학교 아이들 수학은 언제 이렇게 어려워진 걸까? “아빠는 네 나이 때 수학을 안 배우고 산수를 배웠어. 하하하!” 은근슬쩍 넘어가려 해도 아이들의 눈초리는 점점 의혹에 찬다.
스스로를 위해 뭘 배울까 하다가 후보 목록에 수학도 넣기로 했다.
수학이 굳이 계산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서다. 수학적인 사고로 글을 쓸 수 있다면 어떤 글이 나올까 궁금하다.
이런 생각을 삼십 년 전에 했다면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큰아이를 처음으로 수학 학원에 보냈다.
첫 번째 수학 학원에서는 이렇게 선행 학습이 되어 있지 않은 아이는 받을 수 없다며 거절당했다.
앞서기 위해 개별적 선행 학습이 필요하다면 학교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웃고 말았다.
아이를 수학으로 괴롭히고 싶지는 않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되 일찍 포기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여차하면 응원삼아 나도 같이 수학 학원을 다녀 볼까 고민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쓰면 동화가 되겠다 싶은 속셈도 없지는 않다.
출처: 월간 좋은 생각 http://www.posit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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