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중의 반짝반짝 28. 브리사와 흰둥이
어릴 적 우리 집에는 '브리사'라는 오래된 차가 있었다.
《치티치티빵빵》이라는 자동차 동화에 빠져 있던 나는 그 차를 친구처럼 좋아했다.
밤이면 담요를 가지고 뒷자리에 들어가 잠을 잤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이 아름다웠고,
자정 넘어 라디오도 은근했고,
툭툭 소리를 내며 식어 가는 엔진도 말을 거는 것 같아 정겨웠다.
브리사를 타고 달리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툭하면 엔진이 멎었기 때문이다.
비포장도로를 달려 시골 친척 집에 갈 때였다. 아버지는 진지한 얼굴로
“내가 너를 이렇게 편하게 키워도 되는지 모르겠다.” 하셨다.
걸어 다녔던 당신 어릴 적을 생각하면 자가용을 타고 가는 내가 교만해질까 염려하셨던 것 같다.
나는 차라리 걷는 게 마음 편했다. 아니나 다를까
브리사는 타이어에서 튄 돌멩이에 밑부분을 얻어맞고
들판 한가운데서 서 버렸다.
나는 시동이 걸릴 듯 말 듯 애태우는 브리사를 수백 미터나 헉헉대며 밀어야 했다.
추운 겨울에는 전날 담요를 덮어 둬도 아침에 시동이 안 걸렸다.
근처 여중고생들이 줄줄이 등교하는 큰길에서 브리사를 밀었는데 창피하니까 고개는 푹 숙이고 땅만 바라보았다.
내 다리가 유난히 튼튼한 것은 그때 강하게 단련되었기 때문이다.
자전거로 평생을 보내고 싶었는데 이 년 전에 아내의 강력한 주장으로 자동차를 샀다.
흰색 중고차라 흰둥이가 되었는데 아이들과 다니기에 편하지만
눈보라에도 자전거를 타던 정열을 잃어버린 것 같아 아쉽다.
아이들 둘은 자동차에 관심이 큰 나이다.
얼마 전 독일 차를 타 본 아이들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다며 한마디씩 했다.
내가 타 보지 않아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는데 큰애가 내 눈치를 살피더니 한마디 했다.
“그래도 나는 흰둥이가 좋아요.”
“왜?” 무심코 묻자 진지한 답이 돌아왔다.
“우리 가족이잖아요.”
그 마음이 예쁘지만 사나흘에 한 번씩 흰둥이를 밀고 다니라면 생각이 바뀔 게 뻔하다.
흰둥이는 가족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은지 큰 고장 없이 쌩쌩 잘 달려 준다.
브리사를 생각하면 흰둥이가 고맙다. 그렇다고 내가 브리사를 미워한 건 아니다.
달리지 않을 때 더 사랑했을 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