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흠뻑 빠진 오바마의 말’
 

실제로 말하는 것은 듣는 사람 위주로 해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교 정도만 나오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이것은 모범답안일 뿐이다. 그만큼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 리더의 권력이 클수록 그런 원칙은 지켜 나가기 힘들다. ‘리더’라는 말 자체, 그리고 리더의 위치에서 오는 성과에 대한 부담 등은 자신도 모르게 리더 자신 위주로 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여느 리더와 달리 상대방 중심, 즉 ‘타자 중심의 대화’에 능통하다.
 

“저는 다섯 살 무렵에 ‘나중에 미국의 상원의원이 될 거야’라고 말하던 사람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제게 심어준 가치에 맞춰 살아가고 싶은 마음, 그러한 가치를 계급과 인종과 민족으로 갈갈이 찢긴 세상과 조화시킬 방법을 찾고 싶었던 것이 제 정치활동의 뿌리입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밀어붙이거나 의무감에 떠밀려 공직에 나선 셈이지요. 정치에 재미를 느꼈거나 소파에 앉아 야구구경이나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서도 아닙니다. 그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 일은 여러분 앞에서 워싱턴을 대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워싱턴에 가서 여러분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오바마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정치를 하겠다거나 대통령을 꿈꿔왔다는 언급은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꿈꾸는 대통령의 필요성에 관해 말해주고 있는 것인데, 듣는 이로 하여금 그가 바로 우리가 그려오던 대통령일 수도 있겠다는 신뢰를 자아내는 것이다. 그는 선거 캠페인 연설에서부터 지금까지 ‘나’라는 주어보다 ‘우리, 미국, 우리나라, 당신’ 등의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해오고 있다. 비전을 통한 변화는 20세기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반복돼온 리더들의 외침이다. 하지만 매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듣는 이의 귀를 막는 역효과만 가져올 뿐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비전과 변화가 중요하지만 듣는 각각의 다수를 하나로 결집하는 데는 소속감, 즉 ‘우리’라는 개념을 무의식 속에 새겨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여기에 온 것은 이 나라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전쟁에 직면해서는 평화가 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절망에 직면해서는 희망이 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을 소외시켰던 정치, 지금에 만족하라고 했던 정치, 우리를 너무 오래도록 분열시킨 정치에 직면해서는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능성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완전한 단결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2007년 대통령 출마 선언문의 한 구절이다. 여기서만 보더라도 오바마는 희망의 메시지를 끌어내고, 듣는 이로 하여금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숨을 불어넣는다. 비난과 비판으로 얼룩진 정치판을 희망과 행복의 장소로 바꿔 준 것이다. 무엇보다 오바마는 개인의 경험을 진솔하게 공개해 감성을 자극했다. 무작정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들로 하여금 화자 역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통해 동질감과 진정성을 느낀 후 재인식된 상태에서 오바마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경쟁 상대나 적대적 관계에 있는 사람에 관해서도 그는 객관적으로 인식해 말하는 것에 강하다. 2000년 대선운동 기간에 조지 부시의 행적을 비판하는 데서도 신랄하게 까대기보다는, 오히려 틀린 것을 다름으로 인정하는 마인드가 돋보인다.
 

“조지 부시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다른 것을 믿는 사람일 뿐입니다.”
대부분의 화자들은 일인칭 주어를 꼭 써서 말해야 함을 철칙으로 여긴다. 하지만 지금 조직에서 ‘나’라는 말을 ‘우리’로 바꾸기만 해도 설득의 수준, 조직의 분위기는 몰라보게 달라질 수 있다.

‘자신감’이 불러일으킨 부작용

오바마가 타자 중심의 대화로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는 화자 중심의 대화로 리더십을 발휘한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힐러리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연설에 관심을 가졌다. 마틴 루터 킹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고 전교 집회에서 연설을 하면서 대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경험하게 된다. 이때부터 자신감을 얻은 힐러리는 웰즐리대학교 졸업식 연설로 그 가능성을 확실하게 인정받는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열변보다, 감싸주고 들어주는 감성적인 터치가 이뤄져야 하는데 진취적이고 공격적인 힐러리의 성향에 대다수 미국민들은 열광했다. 적어도 오바마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으로서 힐러리는 거센 비난을 받는데 익숙해져야 했다. 나서기 좋아하는 치맛바람 일으키는 부정적 이미지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언론에 노출됐지만 힐러리가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의 첫번째는 ‘새로운 나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자신의 존재의의를 명확하게 되짚고 상기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여성으로 승부욕을 검증받은 것이다. 어떤 비난도 감수하며 지혜롭게 위기를 인식하고 넘겼다. 자신이 옳다는 점에서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자신감, 승부욕이 뿌리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카리스마’의 어원은 신이 주신 재능이라고 한다. 힐러리에게도 여성이었지만 남성 이상의 ‘신이 주신 재능(Gift)’ 이 뛰어났다.

힐러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는 주변의 평가를 비롯, 힐러리 역시 자신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서 자신했고, 그것은 자연히 그의 말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특히 영부인 시절 빌 클린턴과 르윈 스키의 추문이 사실로 드러난 이후 힐러리는 대중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고도 솔직하게 말했다.

“결혼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 게 사실이고, 클린턴에게 매우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처럼 나를 웃게 만들고 이해하는 사람은 이제껏 없었습니다. 그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그는 내가 만나본 사람 중 가장 흥미롭고 정렬적이며 활발한 사람입니다.”

이 말을 통해 대중은 그녀의 결단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지지도 71%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카리스마에 대중의 지지를 얻었지만 또 대중은 이런 카리스마를 불편해하는 마음이 점점 자라났다.

“No way, no how, no McCain.”

‘답도 없고, 방법도 없기 때문에 맥케인도 없다’는 힐러리의 연설 중 일부분이다. 힐러리는 자신의 강점을 부각하는 데 상대방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특히 오바마와 경선 대결에서 힐러리는 자신의 화법 덕분에 참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되는 것이다.

“내 남편도 캘리포니아주 프라이머리에서 이길 때까지 경선을 중단하지 않았다. 우리는 로버트 케네디 전 상원의원도 6월 캘리포니아에서 암살당한 것을 기억한다.”

자신의 경선이 계속 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암살’이라는 단어를 굳이 쓴 이유는 ‘오바마’라는 이름이 ‘오사마 빈 라덴’을 연상시키는 것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고, 유권자들 역시 이러한 힐러리의 의도를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오바마를 두고 힐러리는 ‘애송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나’와 ‘상대방’은 수준이 다름을 부각하려고 한 것이지만 인종차별이나 비꼬는 말투로 상대를 누르려 하는 힐러리의 모습에서 오히려 불편한 카리스마를 느낀 것이다. 오바마의 약점을 들춰내 비꼬는 듯한 말투는 타자 입장에서 굉장히 권위적으로 들리게 마련이다. 오바마를 공략한 내용이었지만 타자의 입장에서 듣기에는 감동보다는 오히려 불편한 마음이 더 커지게 된다.

결정적인 말 실수가 평생 꿈꿔온 대통령의 자리를 물 건너가게 만든 것이다. 최고 리더의 자리는 상대가 어떤 공격을 해도 꿈틀하기보다는 그것을 감싸주는 것이 진정한 덕목이라는 것을 따르는 자들은 바란다. 그런 입장에서 힐러리의 파문 발언을 ‘경선을 준비하다 부주의로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화답한 오바마의 말에 청중들은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타자 중심의 화법은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드는 데 타자가 주체가 되기 때문에 존중 받는 느낌이 크다. 한편 화자 중심으로 말하는 리더에게서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통해, ‘나’라는 주체는 따라가는 사람의 느낌이 크다. 어떤 것이 더 좋다고 말하기보다, 리더는 상대방에 따라 화자 중심으로 말할 것인지, 타자 중심으로 말해야 하는지를 구분하고, 말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 더 맞다.

출처 : http://blog.naver.com/urbestceo/20067727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