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은 기억은 나지 않는 걸까? 좋은 게 뭔지 잘 몰라서?
여남은 가지가 생각이 났는데, 다 가족과 관계된 것이다. 처음으로 가족 누구와 어떻게 소통했다는 얘기들이다. 가족이 관련된 거 말고는? 또 여남은 가지가 떠올랐는데, 그건 또 가족이 알면 안 될 일이다. 가족에게는 경악스런 짓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잊으려고 노력 중인 기억이다.
나는 프로 야구광인데 평생 반려자로 여기는 팀이 딱 한 번 우승했다. 우승하던 날, 나는 좋아서 날뛰었지만 벗들은 어이없어 날뛰었다. 나는 좋았는데 여럿이 나빴던 기억은 좋은 기억일까, 나쁜 기억일까? 아무려나, 스포츠 관련도 제외하자. 적어도 좋은 기억이라 할라치면, 삶에 지쳐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불현듯 활력소가 돼주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보는 스포츠는 그때뿐이다.
입학, 졸업 같은 것도 빼고, 제대한 것도 빼고, 빼고 빼다 보니까, 도무지 없다. 평생 왕따 당한 거니? 청개구리 심보로 살았어? 어째 내세울 만한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냐고?
그러다가 처음은 다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돈을 벌었을 때,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 처음으로 뭔가를 깨달았을 때……. 여전히 처음 보는 거라면 흥미롭고, 처음 겪는 상황이라면 긴장이 되고, 처음 대하는 이야기라면 설레지 않는가. 그래서 좋은 기억은 드문 것일까? 내게 좋은 것은 처음 경험할 때의 흥미와 긴장과 설렘으로 충만한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사진첩 속에 있을 리가 없다. '좋은'을 기억이 아니라 생활에서 찾는 게 빠르겠다.
김종광 님 | 소설가
김종광 님은 1998년 문학동네에 단편 소설 〈경찰서여, 안녕〉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조선의 나그네 소년 장복이》, 《별의별》, 《왕자 이우》 등이 있습니다. 2000년에는 대산창작기금을, 2001년에는 신동엽창작상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