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체육센터에 갔다. 비어서 입장했더니 누가 와서 가로막았다. “우리 동호회가 열 테이블 잡아놓고 치고 있었어요! 잠깐 쉬는 건데…” 하는 것이다. 아들 앞에서 무력하게 물러 나왔다. 괜히 표 받는 분께 “여기는 동호회만 치나요? 푯값 돌려주세요!” 억지나 부렸다.
동호회 아저씨랑 여기 전세 내셨느냐고? 어쩌고저쩌고하면서 한판 뜨고 오지 않은 게 후회돼서 잠을 못 잤다. 탁구를 못 쳐서 억울하고 분한 게 아니라, 아들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해 보고 그냥 쫓겨나고 마는 힘없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견딜 수 없었다. 놀랍게도 열흘 동안이나 그 일이 계속 생각났고 머리가 아프도록 분했다. 내 잗다란 마음의 끝장을 보았다.
위안이 되는 것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겠다. 프로급 동호회 여러분께 속상했던 아마추어 가족이 많았고 그분들도 나만큼이나 오랫동안 화를 못 풀었다는 것이다. 동호회 분들은 아마추어들이 그런 사소한 일로 왜 타격받는지 잘 모를 것이다.
대개 가족과 왔기 때문이다. 한 달에 두어 번, 어쩌면 일 년에 딱 한 번 가족끼리 (운동이라기보다) 놀러 왔는데 그렇게 밀려나면 쫓겨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가장은 권위를 실추당했다고 자괴할 수밖에 없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하필이면 동호회가 날 잡은 날 그 가족이 갔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동호회 회합이 없을 때 국민체육센터는 거의 여유롭다)
사실, 나약한 가장은 참음을 실천한 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아직도 억울해하고 있다면, 그때 참은 것을 자랑하는구나 귀엽게 보아주자.
김종광 님 | 소설가
김종광 님은 1998년 문학동네에 단편 소설 〈경찰서여, 안녕〉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조선의 나그네 소년 장복이》, 《별의별》, 《왕자 이우》 등이 있습니다. 2000년에는 대산창작기금을, 2001년에는 신동엽창작상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