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썰매장에 갔다. 이런 데 와서 저렴하다고 느껴본 적 없다. 줄을 섰다. 이런 데 와서 줄 안 서본 적 없다. 우리 차례가 왔다. 좀 무서웠다. 보통 경사가 아니잖아. 나이가 드니 겁만 많아졌다. 은근히 떨리기까지 했다. 창피했다. 미끄러졌다. 5초쯤? 10초쯤? 암튼 되게 짧은 시간이었다. 뭐랄까, 한 달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 처음만큼 각별한 쾌감은 없었지만, 오래 줄 서고 순간 타고를 열댓 번이나 반복했다.
네 안전을 걱정하느라, 네 투정 때문에, 마음 편히 즐기지 못했던 때도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었다. 네가 좀 크니, 비로소 나도 즐길 수 있구나. 함께 가되,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신나는 게 가능해진 시점부터.
너를 위한다고 갔지만 사실은 내가 더 즐겼다. 네 덕분에 가본 곳들이 참 많다. 스케이트장, 놀이공원, 물놀이랜드, 눈썰매장… 이런 데는 네가 가자고 하지 않았으면 결코 가지 않았을 곳이다. 주말 교통체증, 끔찍한 줄서기, 비싼 돈! 거길 왜 간단 말이냐. 어른이 그런 유치한 놀이를 어떻게 해. 네 덕분에 경험할 수 있었다. 동심이 된 것처럼 재미있었다. 몸에 찌든 위선과 허세와 눈치를 무장해제하고 천진난만한 기쁨을 누렸다.
가족끼리가 아니면 갈 수 없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교통체증이 있고 줄을 서야 하고 돈 아까운 줄 몰라야 하는 그런 곳. 아직까지는 같이 놀러 다녀주는 네가 참말로 고맙다. 늦기 전에 한 곳이라도 더 가봐야 할 텐데. 아빠는 너랑 유치하게 놀고 싶다! 그게 집에서는 왜 안 되는 걸까!
김종광 님 | 소설가
김종광 님은 1998년 문학동네에 단편 소설 〈경찰서여, 안녕〉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조선의 나그네 소년 장복이》, 《별의별》, 《왕자 이우》 등이 있습니다. 2000년에는 대산창작기금을, 2001년에는 신동엽창작상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