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바닷가 마을에 지을 집을 구상할 때 일이다. 바다를 볼 수 있는 창을 조그맣게 그렸더니, 다 좋은데 한 가지 아쉽다면서 “창을 크게 만들면 어떨까?” 묻기에, “오래 보는 바다는 멀미 납니다.” 했더니, 눈 밝은 주인은 금방 알아들었다.
바닷가에 붙어 사는 집들의 창은 크지 않다. 살림과 생활을 우선하는 집에선 바다를 보는 시간이 잦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장이나 숙박 시설은 창문이 크다. 어쩌다 와 오래 머물지 않고 바다만 쳐다보다 가기 때문이다. 바닷가에 이유 없이 큰(통)창을 낸 살림집들은 살면서 창문을 가리거나 막는 일이 잦다. 지나치게 밝고 많이 열린 전망이 일상생활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산속에 있는 어느 절집을 구상할 때, 선방에서 밖이 보이지 않게 숨은 창을 그렸더니 “방 안에서 숲을 볼 수 있으면 어떨까?” 하기에, “숲을 보고 싶으면 숲 속으로 걸어가자.” 화답해서 그 방에는 숲을 보는 창이 없다. 좋은 풍경·풍광·경치일수록 앉아서 보는 것보다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장면의 일부가 되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매일 먹는 꿀이 달지 않게 느껴지듯이 제아무리 절경도 늘 보(이)면 맛(멋)이 떨어진다.
창문의 1차적 기능은 빛과 바람을 통하여 공간을 건강하게 하는 것인데 지나치게 밝음만 있는 공간은 오히려 정신을 산만하게 만든다. 빛을 아껴 어두움과 조화를 이뤄야 공간의 질과 격이 높아진다. 일상 속의 풍경·풍광·경치도 좋을수록 아껴 봐야 더 맛(멋)이 나는 법이니 창은 작을수록 좋다. 밖을 보는 창이 줄어든 만큼 자신의 내면을 보는 눈은 깊어지리라.

이일훈 님 | 건축가


이일훈 님은 '사람이 건강하게 사는 집'을 늘 고민합니다. '기찻길 옆 공부방', '밝맑도서관', '우리 안의 미래 연수원' 등의 건축을 통해 주변과의 조화, 공동성의 실천, 친환경과 에너지 등의 관심사를 탐구했습니다. 글맛과 입담이 좋은 그는 《사물과 사람 사이》, 《제가 살고 싶은 집은》,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불편을 위하여》 등 다수의 책을 펴냈습니다.

출처 좋은생각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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