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꼽으라면 사람마다 제각각이지만, 가장 재미있는 것을 꼽으라면 뭔가를 구경하는 것 아닐까. 그것도 내 힘은 하나도 안 들이고, 매일 볼 수는 없고 어쩌다 볼 수 있는 것 말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라는 말이 생겼나 보다. 나는 그것을 남의 불행을 바라는 악마의 마음이 가득해서가 아니라(싸움을 말리거나 불난 곳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하는 의인이 얼마나 많은가.) 싸움 구경과 불구경이 공짜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람들 마음속엔 공짜를 마다않는 심보가 있어 공짜라면 싸구려도 좋고 값나가면 더 좋아한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모두 공짜를 좋아한다. 오죽하면 죽어도 좋다는 “공것이라면 비상(양잿물)도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겠는가.
공짜란 '힘이나 돈을 들이지 않고 거저 얻은 물건'을 이르지만, 세상엔 물건 아닌 공짜도 많다. 갖지는 않고 느낄 수 있는 대상 말이다. 세금이 들어간 도로는 공짜가 아니지만 거리 풍경은 공짜다. 멀리 보이는 앞산과 동네를 품는 뒷산이 누군가의 소유라 하더라도 보고 느끼는 것은 공짜다. 가로수 밑에 자라는 잡초를 관찰‧감상하는 것도 공짜다. 과수원의 낙과도 임자가 있지만 경계 없이 풍겨 오는 향기는 거저다. 계절마다 뒤척이는 벌판의 풍경을 적셔 주는 빗물도 공짜다. 바닷가에 일렁이는 파도도 공짜다. 아 뭇 생명을 숨 쉬게 하는 바람도 공짜다. 그것뿐이랴. 세상 만물 보(이)게 하는 햇살도 거저, 푸른 하늘도 물론 공짜, 구름은 공짜에 덤이라니……. 그러고 보니 모두가 누리는 공짜일수록 진정 소중한 것이다. 더 아낄 일이다.

이일훈 님 | 건축가

이일훈 님은 '사람이 건강하게 사는 집'을 늘 고민합니다. '기찻길 옆 공부방', '밝맑도서관', '우리 안의 미래 연수원' 등의 건축을 통해 주변과의 조화, 공동성의 실천, 친환경과 에너지 등의 관심사를 탐구했습니다. 글맛과 입담이 좋은 그는 《사물과 사람 사이》, 《제가 살고 싶은 집은》,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불편을 위하여》 등 다수의 책을 펴냈습니다.

출처 좋은생각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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