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회사에 다닐 때는 다른 사람의 발을 관찰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신발이 다를 것 같은데 유행을 따라 똑같은 신발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걸 보면 계절을 따라 떼로 번식한다는 나그네쥐를 보는 것 같았다. 눈높이를 낮추면 사람이 신발을 신는 게 아니라 신발들이 사람을 업고 다닌다.
휴대폰 부품 회사에 다닐 때는 누가 통화만 하고 있어도 휴대 전화를 쳐다봤다. 아는 사람이라면 전화기 뒷부분을 열어 부품의 일련번호를 확인하기도 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일을 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하는 일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데 경찰이 되면 어떻게 보일까? 종교인은? 권력자는? 재벌은? 범죄자는?
작가로 살아가는 지금은 세상이 온통 이야기로 보인다.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둘러보면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눈길을 끈다. 한쪽 발이 뭉개진 비둘기는 왜 고양이를 노려볼까? 남학생 목발에 달린 리본은 누가 매 준 걸까? 군복을 입은 노인은 왜 대낮부터 막걸리를 마실까?
한 사람의 삶은 수십 권을 받아써도 모자랄 이야기다. 수십억의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 놓는다면 즉시 이야기의 우주가 생겨날 것이다. 게다가 사람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사람보다 많은 동물과 식물, 무수한 물건들까지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며 아무도 들어 주지 않는 이야기를 끌어안고 세상을 뜬다.
이야기로 이루어져 끝없이 아득한 세상. 자기가 주인공인지 모르는 주인공들 옆을 작가들이 어슬렁거리며 곁눈질할 뿐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써내는 작품은 히말라야 산맥의 돌멩이 하나. 태평양 바닷가의 조개껍데기 하나가 아닐지.
생각하면 삶이란 한없이 작아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도 바라건대 내가 캐낸 이야기는 은하수의 먼지별만큼 반짝였으면 좋겠다. 누군가 별빛을 바라보듯 다른 존재의 삶도 기억할 수 있게 말이다.

김남중 님 | 동화 작가

김남중 님은 2004년 《기찻길 옆 동네》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자존심》으로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 《나는 바람이다1.2》, 《불량한 자전거 여행》, 《새나라의 어린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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