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님은 연전에 돌아가시고 어머님은……, 혼자 사신다. 같이 못 살아 늘 안타깝지만 어머님이 자식을 염려하는 마음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도 못 미친다. 일주일에 한 번 뵈면서도 사근사근하지 못하고 데면스레 낮잠이나 자다 온다. 참 한심한 자식이다. 그래도 어머님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라고 하신다.
어머님은 연세가 드시면서 난청 증세가 심해져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하신다. 고함을 쳐도 듣지 못하신다. 보청기도 소용없어 마주 앉아 필담을 해야 하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소통할 방법이 없어 할 말이 있으면 직접 가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전화기에 금속성 소리가 크게 나는 장치를 해서 전화기 울리는 소리는 듣지만 말소리는 듣지 못하신다.
나는 매일 저녁(6~7시 사이)에 전화를 건다. 그 시간에 오는 전화는 아들의 전화일 것이라고 짐작하실 어머님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다. 전화를 받으시면 아……, 오늘도 아무 일 없으시구나. 평온해진다. 수화기를 통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시면서도 꼭 물으신다. “오늘 일은 잘 했느냐?”, “날이 추운데 옷 잘 입고 나갔느냐?”, “아픈 데 없느냐?” 등. 그럴 때마다 나는 고함을 쳐서 대답한다. “예! 어머님!” 물론 어머님은 듣지 못한다.
나는 여럿이 일을 하(보)는 중이라도 저녁 그 시간이 되면 슬그머니 고함치는 전화를 걸기 위해 밖으로 나온다. 어머님은 전화를 받을 때마다 “아들, 목소리 들으니 좋구나!” 하신다. 귀먹은 어머님은 어떻게 자식의 말을 알아들으실까. 아, 어머님은 가슴에 달린 귀로 자식의 말을 들으시는구나. 사랑하면 가슴에 귀가 달리는구나.


이일훈 님 | 건축가

이일훈 님은 '사람이 건강하게 사는 집'을 늘 고민합니다. '기찻길 옆 공부방', '밝맑도서관', '우리 안의 미래 연수원' 등의 건축을 통해 주변과의 조화, 공동성의 실천, 친환경과 에너지 등의 관심사를 탐구했습니다. 글맛과 입담이 좋은 그는 《사물과 사람 사이》, 《제가 살고 싶은 집은》,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불편을 위하여》 등 다수의 책을 펴냈습니다.

출처 좋은생각 홈페이지

http://www.positive.co.kr/good/71338_48_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