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농산물 공판장으로 장을 보러 간다. 시골에서 막 실려 온 채소와 과일이 끝도 없이 쌓여 있는 천국이다. 싱싱한 데다 싸기도 해서 마음껏 과소비를 하는데 이번에는 양송이를 큰 상자로 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겨울 양송이가 더 맛있다. 수확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았을 양송이는 완벽하게 새하얀데 날로 먹어야 제 맛이다. 잘 드는 칼로 양송이를 얇게 썰어 입에 넣으면 촉촉한 것이 바삭하고, 부드러운 것이 오독오독하다. 얌전하게 내린 첫눈 위를 걷는 소리가 보득보득 입에서 느껴지고 은근한 향기는 코로 올라온다.
양송이 맛을 더하려면 맛있는 고추장이 필요하다. 복어 회처럼 얇게 썬 양송이 한 접시에 어머니표 고추장이면 사르르 눈이 감긴다.
대학생 때 캐나다 아저씨 집에서 두어 달 산 적이 있다. 한국 음식에 별 관심이 없는 주인이었는데 어느 날 내가 양송이를 썰어 먹는 걸 보고 그 요리 이름은 뭐냐며 웃음을 터뜨렸다. 살짝 기분이 상해 일단 먹어 보라며 접시를 밀어 주었는데 마침 남도의 친구 어머니가 보내 주신 쇠고기볶음 고추장이 옆에 있었다.
빵에 발라 먹으려고 아껴 둔 고추장, 얼마 남지 않아 소심하게 떠낸 고추장에 양송이를 찍어 먹은 주인은 대번에 표정이 달라졌다. 그 뒤로 주인은 내가 양송이를 먹을 때마다 조용히 나타나 식탁에 앉았다.
나는 주인에게 실파의 초록 부분을 잘라서 쌈장에 찍어 먹는 맛까지 알려 주고 그 집을 떴다. 뒤에 남은 남도 친구는 주인이 한국 마트에서 고추장을 사 왔는데 맛있긴 하지만 어머니 고추장 맛이 아니라고 투덜거렸다는 후일담을 전해 주었다.
싱싱함에 눈이 멀어 충동구매한 양송이 상자는 먹어도 먹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속갓이 회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양송이는 구워 먹으면 또 맛있다.
끼니마다 프라이팬 가득 양송이를 굽다가 양송이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또 하나 깨달았다. 다음에 큰 상자로 사게 되면 곧바로 장모님 댁에 절반을 뚝 나눠 드리는 것이다. 그것이 싱싱한 양송이를 즐기는 세 번째 방법이다.

김남중 님 | 동화 작가

김남중 님은 2004년 《기찻길 옆 동네》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자존심》으로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 《나는 바람이다1.2》, 《불량한 자전거 여행》, 《새나라의 어린이》 등이 있습니다.

좋은생각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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