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구화를 좋아한다. 같은 브랜드의 농구화 십여 켤레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덕분에 그 회사 농구화에 대해서는 제법 아는 척을 할 수 있었다.
마지막 직장이었던 신발 회사에 들어간 것도 그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나름 절실한 이유로 회사를 옮기려고 구인 정보를 검색하다 눈이 반짝 뜨였다. 업무 내용, 근무지, 급여 등이 모두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완벽한 회사가 보였다. 정성 들여 이력서를 만들어 보냈더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면접 분위기는 좋았다. 사장님이 마지막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농구화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우리 회사 신발은 어떤가요?”
순간 내 얼굴은 급속 냉동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지원서를 낸 곳은 농구화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미국 브랜드의 한국 판매 회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농구화 시장에서 밀려난 거의 화석 같은 존재였다. 농구화를 고를 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신어 보지도 않은 브랜드여서 할 말이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 회사에서 꼭 일하고 싶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딱 한 번만 거짓말을 할까?
순간적으로 갈팡질팡 고민을 한 끝에 결국 입을 열었다.
한 번도 신어 보지 않았지만 이력은 알고 있다고. 지금까지 1위 브랜드의 농구화만 신었노라고, 경쟁할 제품을 잘 아는 것이 결국 우리 제품을 잘 만드는 비결이 되지 않겠냐고.
면접실을 나와서도 후회가 되었다. 좋은 분위기로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차려 준 밥상을 걷어찬 느낌이었다. 결과를 궁금해하는 아내에게 할 말이 없었다.
다음 날 면접을 통과했으니 일주일 뒤 출근을 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 나서 한참 멍했던 기억이 난다. 신발 회사에 다니고 나서야 내가 신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문가들에게 단번에 들통 날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사장님이 내가 좋아했던 농구화 회사에서 오래 일하다가 우리 회사의 전문 경영인으로 스카우트되었다는 건 몇 달 뒤 인사 담당자에게 들은 비밀이었다.

김남중 님 | 동화 작가

김남중 님은 2004년 《기찻길 옆 동네》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자존심》으로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 《나는 바람이다1.2》, 《불량한 자전거 여행》, 《새나라의 어린이》 등이 있습니다.

좋은생각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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