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이었다. 대전 출장에서 돌아오려는데 직원들이 한잔하고 다음 날 가라며 붙잡았다. 그러고 싶었지만 다음 날은 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조퇴를 하고 상을 받으러 갈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자정 넘어 중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눈발이 제법 날렸다. 고갯길을 넘어섰는데 이쪽으로 상향등을 번쩍이는 차가 보였다. 반사적으로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는 순간 승합차는 이미 빙판길에 들어서 있었다. 차 꼬리가 핑그르르 돌자 재빨리 핸들을 반대로 감았지만 차는 빙글빙글 돌며 고속도로를 미끄러져 갔다.
문득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굉음과 함께 이 장면이 끝날 거라는 것도, 결말이 비극일 것 같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자동차는 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 위를 컬링 스톤처럼 미끄러지다 중앙 분리대를 가볍게 들이받고 멈췄다.
갓길에 차를 댄 뒤 내려서 담배를 하나 물자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뒤따라오던 차들이 경적을 울리고, 부딪치고 비상등을 켜는 아수라장을 바라보다가 다시 차에 올라탔다.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길인데 눈과 빙판길 때문에 새벽이 되어야 집에 도착했다.
따뜻하게 잠든 아내와 부드러운 아기를 보며 어두운 방 안에서 한숨을 쉬었다. 경찰에게 걸려온 전화로 이들을 깨우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누우면 못 일어날 것 같아 일찍 출근을 했고 오전 근무를 마친 다음 시상식장에 갔다. 축하를 받고 사진을 찍고 뒤풀이 자리에서 왁자지껄 웃으면서도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내가 이 자리에 없을 수 있었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이 자리에서 나를 지워도 여전히 즐겁고 떠들썩하려니 생각하자 괜히 쓸쓸했다. 웃으며 악수하고 대답하는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틀 밤을 자지 않았고 밤새 술을 마셨지만 쓰러지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아침 일찍 집에 돌아와 다음 날 정오까지 죽은 듯 잤다. 무거운 머리와 쓰린 속으로 일어났더니 오후만 남은 일요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원히 쉴 뻔했다가 다시 정신없이 달려야 하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자 낯설었던 어제 하루가 꿈처럼 아득했다. 참 이상한 꿈이었다.

김남중 님 | 동화 작가

김남중 님은 2004년 《기찻길 옆 동네》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자존심》으로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 《나는 바람이다1.2》, 《불량한 자전거 여행》, 《새나라의 어린이》 등이 있습니다.

좋은생각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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