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이 환영받는 시대다. 그런데 일찍 노안이 된 사람이 나이 들어 동안이란 소리를 듣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일관성이다. 십 대에 삼십 대의 얼굴이 될지라도 오십 대까지 일관성을 유지하면 나중에 동안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구청에 다녀온 아내 얼굴이 밝았다. 할아버지에게 길을 알려 드렸더니 “학생, 고마워.” 했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맞장구를 잘 쳐 줘야 한다. 그 할아버지는 분명 천국에 가실 것이다.
십여 년쯤 전에 나도 학생 소리를 한 번 들은 적이 있다. 청바지에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끌고 출근하려는데 아내가 아기를 안고 배웅을 나왔다. 아기가 우니까 옆집 할머니가 달래며 “왜 울어, 형 학교 간다고 울어?” 하셨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 표정 관리가 안 되고 분위기도 이상해져서 되도록 말하지 않는다. 그 할머니는 정말 왜 그러셨을까? 궁금하고 고맙다.
며칠 전, 학생에 가까운 호칭으로 나를 불러 준 분이 있다. 전화가 와서 받아 보니 모르는 할아버지였다. 누구인지, 어디서 사는지, 왜 전화번호가 전화기에 있는지 산꼭대기에서 골짜기를 향해 소리치듯 통화를 하다 보니 전날 동네 미장원에서 만난 인연이었다.
미장원에서 할아버지는 젊은이들이 컴퓨터 박사니까 휴대 전화 벨소리를 크게 하는 법도 알지 않겠냐며 내게 전화기를 내밀었다. 소리를 가장 크게 키워도 할아버지는 작다고만 했다. '전화기를 잘 모르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할아버지 전화기와 똑같은 내 전화기를 보여 드렸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효도 폰인 내 전화기를 보자 할아버지는 나를 더 이상 젊은이라 부르지 않고 '젊은 양반'이라 불렀다. 전화기의 여러 벨소리를 모두 실험한 끝에 둘이 내린 결론은 할아버지의 보청기 고장이었다. 그렇게 헤어진 할아버지와 다시 통화를 하니 반가웠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인사 역시 “젊은 양반, 잘 지내시오.”였다.
누군가 나를 '학생'이라 불러 주는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알까? 무심코 부른 '학생' 소리에 행복해하는 중년들이 있다는 것을. 그렇게 좋은 일을 하신 분들은 정말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김남중 님 | 동화 작가

김남중 님은 2004년 《기찻길 옆 동네》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자존심》으로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 《나는 바람이다1.2》, 《불량한 자전거 여행》, 《새나라의 어린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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