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위해 구두 하나에 인생을 걸다

기쿠치 다케오 菊池武夫

글: 김덕영 (다큐스토리 미디어 대표,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작가)

인생에는 누구나 중요한 고비가 있고 기회가 있다. 시련을 거치면서 사람은 더욱 성숙된 존재로 거듭난다. 자신의 인생을 바꿀 변화의 시기마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독특한 이야기가 하나쯤 존재한다. 특히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성공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다. 오늘 소개할 사람은 가족이 변화의 출발이었고, 삶의 목적이었다. 그의 이름은 기쿠치 다케오. 일본 최고의 구두 장인으로 정평이 높은 인물이다. 흥미롭게도 그가 구두 장인이 되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발이 아파 구두를 신을 수 없었던 딸이 있었다. 그의 나이 55세 때, 그는 딸을 위해서 구두를 만들어주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성공을 향한 변곡점이 되었다.

1924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기쿠치 다케오는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한 가지 남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비범했다는 점이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 그는 15살의 어린 나이로 공작 기계를 생산하는 제조 공장의 선반공으로 취직을 했다. 공장에서의 생활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기 좋아했던 그의 기질과 잘 맞았다. 전쟁이 일본의 패배로 끝나고, 그의 인생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경제난과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면서 먹고 사는 일이 힘들어졌다. 그 시기 그는 헌 구두를 모아서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구두가 흔하지 않았다. 생활 필수품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구두 한 켤레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덕분에 중고 구두라도 수지가 남는 장사였다. 그렇게 가게를 키울 즈음 딸 아이가 발이 아프다며 구두를 신지 못하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기쿠치 다케오는 그때 처음으로 사람의 발모양이 저마다 제각각이고 그래서 구두에 발을 억지로 맞출 경우 발이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곧바로 딸의 구두를 만들기 위해 연구에 돌입했다. 구두 장사를 하던 사람이 직접 구두를 만든다는 말을 듣고 주변 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기쿠치 다케오에게 남들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발이 아파서 매일 통증을 호소하는 딸을 위해 아버지로서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그때부터 구두 만들기라는 도전이 시작됐다. 발의 모양과 기능, 발을 이루는 뼈대를 관찰하면서 딸의 발을 아프게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냈다. 딸의 양쪽 발 모양새가 똑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딸의 경우처럼 발의 모양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었다. 그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발을 구두에 억지로 맞춰서 신고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나이 55세를 목전에 두고 있던 1979년, 그는 도쿄예술대학을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기초를 다지면서 구두 장인의 길을 걷고 싶었다. 흔한 구두 하나를 만들어도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구두를 만들기로 다짐을 했다. 그것은 딸과의 약속이었다. 남들이 예술대학을 다니면서 고상한 삶을 꿈꿀 때, 그는 오직 딸을 위해서 구두 장인이라는 길을 걷기로 마음 먹었다. 딸에 대한 사랑이 인생의 변곡점이 된 것이다. 그에게 늦깎이 대학생활은 새로운 인생을 여는 기초였고, 새롭게 설정된 인생의 도전 과제였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 시작된 대학 생활은 쉽지 않았다. 어렸을 때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공장에 취직해서 일을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수업을 따라가기도 쉽지 않았다. 매일 지친 몸을 이끌고 일을 끝내면, 다시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밤을 새워야 했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시련을 극복하는 강력한 내면의 동기가 있다. 기쿠치 다케오에게 그것은 가족이었다. 해부도를 외우고, 어려운 신체 조직에 관한 책들을 밤을 새워가며 읽었다. 특히 발과 관련된 것은 무엇 하나 소홀히 넘어가지 않았다. 뼈조각 하나 하나, 근육과 신경 조직들을 해부도를 보며 암기했다. 그런 수업을 통해서 인체의 신비를 깨닫기도 했다.

대학 수업은 구두 가게 운영과 병행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평균 8시간 동안 수업이 이어졌다. 그렇게 10년을 공부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기에 더욱 열심히 공부에 매달렸다. 대학에서 배운 것들은 꼼꼼히 메모해서 가게로 돌아와 직원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렇게 배운 지식을 남들과 공유하면서 보람도 느꼈다. 그는 무엇이든 머리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직접 손으로 만들어 봐야 직성이 풀렸다. 그가 구두 장인의 길에 들어서기 전까지 시험 삼아 만든 구두들은 어림잡아 수 백 켤레에 달했다. 강의 시간에 들었던 내용을 써먹기 위해서 매일 연구에 집중 하다보니 해부학 교재와 강의 노트는 누더기가 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의 연구와 노력 끝에 그는 사람에게 가장 편안한 구두를 만들 수 있는 조건들을 찾아냈다. 28개의 뼈로 구성되어 있는 발 근육의 특성들을 하나 하나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두를 신었을 때 사람마다 느낌이 다른 것은 바로 개인마다 발 구조의 차이가 있고, 근육의 움직임이 다르기 때문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런 방식에 기초해서 기쿠치 다케오만의 독특한 구두 제작이 이뤄졌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점점 더 많은 고객들이 그의 구두를 찾기 시작했다. 도쿄와 오사카를 비롯해서 일본 전역에 그의 이름을 딴 지점이 10개나 생겨났다. 도쿄 북동쪽에 위치한 본사에서는 고객의 조건에 맞는 맞춤형 구두들이 생산되었다. 고객들은 그의 구두 가게에 오면, 마치 병원에 온 듯한 착각을 받는다. 주치의가 환자를 진찰하듯, 세밀하게 고객의 발 상태를 검진하고 고객과 대화를 나눈다.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그의 구두는 보통 구두에 비해서 비싼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은 끊임없이 그의 구두를 찾는다. 그의 구두가 지니고 있는 가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그의 구두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구두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의 구두를 만들 때 마치 의사가 환자를 대하듯 했다. 언제나 흰색 가운을 입고 고객들과 대화를 했다. 8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활력있는 구두 장인으로서의 자세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흰색 가운에는 그가 고객을 대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언제가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사처럼 흰색 가운을 입고 고객을 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발에 맞지 않는 구두 때문에 고생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병원 치료까지 받을 정도로 아픔이 해소되지 않았던 사람들이죠. 나는 그들에게는 일종의 구두 의사인 셈입니다.” 100% 손으로 제작되는 맞춤형 구두, 고객의 발 유형을 면밀히 관찰해서 만들어진 디자인. 1970년대 대량 생산 시스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는 ‘구두를 위한 구두’가 아니라, ‘발을 위한 구두’를 만들어야 한다는 자세로 시장에 도전했다. 누구도 그의 맞춤형 구두 사업이 오래 갈 것이라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인간을 중심에 놓는 사업방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의 구두를 신은 사람은 평생 동안 애프터 서비스를 보장 받는다. 언제 어디서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고쳐주고, 다듬어준다. 세심한 배려에 고객들은 평생 구두를 얻은 느낌을 받는다. 오래된 구두라도 자신이 한 번 만든 구두를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는 고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의 사업이 번창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