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경 박사의 부모교육 칼럼] 아이의 질문에 답이 있다

글. 장유경 박사 (발달심리 전문가, UCLA 발달심리학 박사, ‘우리아이 마음보고서’ ‘아이의 가능성’ 저자)

일부러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걷는 것을 배우고 말을 배운다. 그런데 글과 숫자를 배우는 것은 말을 배우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글과 숫자는 일부러 교육을 통해 가르치지 않으면 혼자서 배우기는 쉽지 않다. 
그럼 언제부터 한글, 수학 그리고 영어를 가르쳐야 하나? 종단연구에서 이미 웬만한 교육을 다 시작한 48개월 아이들의 엄마들에게 한글, 수학, 영어 학습을 언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를 물었다. 어머니들은 수 교육 35개월, 한글 40개월, 영어 41개월이 적절한 시작시기라고 대답했다. 그럼 교육의 적기를 어떻게 아는가를 다시 물었더니 ‘아이가 문자나 숫자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하기 시작할 때’라고 했다. 그렇다. 아이의 질문에 답이 있다.

“엄마, 저기 뭐라고 써 있는 거야?”
아이가 길 가다가 간판을 보고 자꾸 이런 질문을 하면 이제 한글을 가르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아이의 질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한글을 배우기 위해 중요한 것은 첫째로 지렁이처럼 구불구불하게 생긴 글자가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는 글자가 어떻게 소리 나는지를 듣고 기억하는 ‘청각기억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에서 아이들마다 차이가 있다. 아이들이 자꾸 글자를 묻는다는 것은 이미 그 글자들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바꿔 말하면 글자나 숫자의 상징(symbol) 기능을 이해한 것이니 첫 번째 조건을 만족한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의 청각기억능력이 문제다. 대부분의 24개월 아이들은 두 음절 이상의 처음 듣는 단어(예를 들어, ‘물푸’)를 기억해서 따라 말하지 못한다. 자기가 들은 소리(즉, 글자의 발음)를 기억하지 못하면 글자를 기억해서 읽을 수가 없다. 물론 유아영재들 중에는 21개월에도 ‘예금당’이라는 간판 글자를 한 번 읽어줬더니 다음부터는 스스로 기억해서 읽을 수 있었던 아이도 있었다. 결국 그 시기는 아이 마다 다를 수 있지만 아이가 자꾸 한글을 어떻게 읽는지 물어보며 관심을 가지고 또 들은 소리를 잘 기억할 수 있으면 그 때가 바로 한글교육을 시작할 적기이다. 그리고 소리를 기억 못하는 아이에게 자꾸 글을 들여대기보다 아이의 청각기억능력을 향상시켜주는 것이 먼저다. 아이와 말소리 따라하기를 게임처럼 자주하는 것이 한글교육의 가장 좋은 준비운동이 된다.

“엄마 3 다음엔 뭐야?”
아이가 무엇이든 세기 시작하고 숫자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것은 숫자가 수를 나타내는 상징이라는 사실을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수 세기를 따라 하긴 해도 수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24개월 아이에게 ‘사탕 하나’를 달라고 하면 45% 정도가 한 개를 줄 수 있고 36개월이 되어야 대부분의 아이들이 ‘두 개’의 의미를 이해한다. 크기의 비교는 수의 개념보다는 쉬워서 36개월이 되면 90%는 둘 중에서 더 큰 것이나 더 작은 것을 안다. 이처럼 수에 관심을 갖게 되면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수를 적용하여 개념을 배울 수 있도록 한다.
‘유아 수학’하면 대부분 숫자나 덧셈, 뺄셈 연산만을 생각지만 유아기의 수학교육은 사실 사고력 교육이다. 유아 수학에는 숫자와 연산의 개념 외에도 크기와 양 비교하기, 분류, 도형, 순서대로 놓기, 측정 같은 영역이 포함된다. 분류는 동물은 동물끼리, 과일은 과일끼리 비슷한 물건들끼리 모으는 활동으로 36개월에는 70%정도가 동물들을 분류할 수 있다. 분류활동 역시 일상에서 엄마 옷과 아이 옷을 분류하거나 흰 양말과 검은 양말을 분류하는 활동 등으로 쉽게 연습할 수 있다. 이렇듯 유아기의 수학은 단순히 수와 연산에만 제한하지 말고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는 활동들 속에서 즐겁게 ‘생각하기’를 교육할 수 있다. 

 “엄마, 강아지는 영어로 뭐야?” 
아이가 이런 질문을 계속 한다면 그 때가 바로 본격적으로 영어를 가르치기 좋은 시기이다. 즉, 아이는 한국말로 ‘강아지’가 영어로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다는 언어의 임의성을 이해한 것이다. 또한 이미 청각기억능력도 어느 정도 발달하고 한국어 어휘도 충분히 많아서 들은 내용을 잘 기억하고 학습할 수 있다.
영어는 엄마들이 가장 자신 없는 영역이지만 성공한 엄마들은 의외로 간단한 방법을 사용했다. 아이가 관심을 가질 때(즉, 질문할 때) 주로 영어단어 익히기로 시작해서 단어를 100개쯤 익힌다. 그 다음에는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한 문장을 실제로 일상에서 아이와 사용하면서 가르친다. 그러면 아이가 영어배우기를 재미있게 여긴다. 반면에 준비가 안 된 아이를 처음부터 영어학원이나 영어유치원에 보내서 갑자기 시험을 보고 영어를 공부로 시키기 시작하면 기억력과 같은 기초 학습능력이 갖춰져 있지 않을 경우엔 영어 학습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따라서 한글을 배울 수 있을 정도의 인지능력을 갖춘 다음에 영어에 관심과 흥미를 보이는 시점을 포착해서 가르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어떤 과목이든 아이가 스스로 관심과 흥미를 보일 때가 가장 좋은 교육의 시기이다. 아이의 질문에는 아이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가 담겨있다. 인터뷰했던 어머니들 중에는 아이가 자꾸 한글에 대해 질문을 하는데도 글을 가르치면 창의성이 없어 질까봐 일부러 안 가르친 분도 있었다. 한글교육을 몇 개월 더 늦춘다고 창의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글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그 결과로 문자와 수 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인지적 성장의 기회를 늦추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아이의 신호를 놓치지 않는 부모가 바로 아이의 가능성을 키우는 부모이다.



 미래엔에듀케어 | 사보 2014년 7+8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