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샤넬은 1916년 또 다른 휴양지인 비아리츠(Biarritz)에 ‘메종 드 쿠튀르(양장점, maison de couture)’를 열어 정식으로 첫 의상 컬렉션을 발표하였다. 샤넬은 스포츠웨어를 중심으로 편물을 포함한 활동하기 편안한 소재를 활용해 단순하고 기능적인 의상디자인을 전개하였고, 그녀의 의상은 사교계 여성들에게 고가에 판매되었다. 당시 미국 <보그(vogue)>와 <바자(Harper’s Bazaar)>에서는 저지를 이용한 샤넬 디자인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다. 저지를 이용한 여성 의상 디자인은 샤넬 이전에 다른 디자이너들에 의해서도 시도되었다. 하지만 샤넬이 저지로 된 여성 의상의 일반화 주역으로 자림 메김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 안에서 우아함을 창출할 수 있었던 샤넬의 탁월한 디자인 센스에 기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샤넬은 1918년 쿠튀리에르(couturier)로 등록하고 파리의 캉봉(Cambon) 거리에 매장을 열었다. 그녀는 산업 발달에 의한 기능성의 중요성 부각은 물론, 여성의 학력 향상, 직업여성 수와 경제력 증가, 여성의 스포츠 참여 기회 확대 등으로 나타나는 여성 라이프스타일의 모던한 변화를 읽어내어, 장식성을 배제한 활동적인 의상을 제안하였다. 기능성을 위해 팔의 움직임이 자유롭도록 소매의 편안함에 주의를 기울였고, 걸음걸이가 자유롭도록 이브닝웨어까지도 종아리를 드러낼 정도로 짧게 디자인하였다. 또한, 샤넬의 단순하고 활동적인 디자인은 애인이었던 영국인 웨스트민스터 공작(Duke of Westminster)과 그 주변 친구들이 착용했던 스포츠웨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구체적인 흔적은 남성 스포츠웨어의 일부인 스웨터, 카디건(cardigan), 배기 팬츠(baggy pants) 디자인의 차용, 편물이나 영국산 트위드(tweed)와 같은 활동하기 편안하고 실용적인 소재의 사용에서 찾을 수 있다. 샤넬의 디자인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1920년대 중반에 그녀는 이미 유명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샤넬 디자인의 단순미와 기능성의 극치는 1926년 발표한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여성의 검정 의상은 상복이나 점원들의 의상으로 착용되었다. 하지만 샤넬은 산업혁명 이후 남성복에서 일찌감치 댄디(dandy)들에 의해 확립된 검은색의 우아한 미적 가치(elegance)를 최고급 여성복에 도입하는 획기적인 시도를 하였다.

또한, 리틀 블랙 드레스로 대표되는 샤넬의 단순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은 복제가 쉬워, 다양한 가격대에서 그에 맞는 다양한 소재로 생산되었다. 특히, 미국에서 샤넬 디자인의 복제가 성행하였는데, 샤넬은 이를 꺼리지 않고 본인 디자인의 가치를 인정받은 결과로 생각하였다. 샤넬 디자인 복제의 성행은 샤넬 디자인의 홍보 효과로 작용함과 동시에, 오리지널 샤넬 상품의 희소성을 높여주는 결과를 낳았다.

샤넬의 의상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다른 이유는 사교계의 중심에 있던 샤넬 스스로가 모던한 여성의 전형적 모델로 자신의 디자인을 홍보한 데에 있다. 샤넬은 직업여성으로 상당한 명성과 부를 축적하였을 뿐 아니라, 상류층 인사와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사회적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하였다. 그녀의 마른 몸매와 짧은 머리 스타일은 1920년대를 풍미한 미성숙한 소년의 모습과 활동적인 여성상을 대표하였다. 샤넬은 항상 자신이 디자인한 의상과 액세서리를 착용한 모습으로 매체와 대중 앞에 등장했고, 이는 샤넬 상품 자체의 홍보뿐 아니라, 이 상품들을 조합하여 탄생할 수 있는 바람직한 스타일의 예를 보여주면서 수요를 창출해 냈다. 샤넬 스타일은 샤넬이 맡은 1920년대와 1930년대 무대 의상과 할리우드 영화 의상 디자인을 통해서도 재현되면서 광고의 효과를 발산하였다.

샤넬의 향수 사업은 1921년 샤넬 N˚5(No. 5)로 시작되어 후에 그녀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다. 폴 푸아레(Paul Poiret)에 의해서 이미 다양한 디자이너 향수가 발표된 이후였기 때문에, 샤넬 N˚5가 첫 디자이너 향수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향수는 디자이너의 이름이 들어간 최초의 향수로 알려져 있다. 또한, ‘5’라는 숫자가 들어간 이름과 단순한 용기 디자인은 시대를 앞선 모던함을 보여주었다.

샤넬의 또 다른 과업으로 1924년 처음 발표한 코스튬 주얼리(커스텀 주얼리,costume jewelry)를 들 수 있다. 당시 여성의 보석은 집안 남성의 경제적인 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샤넬은 이러한 사회적 관습을 깨고, 인조 진주나 크리스털 등의 인조 보석을 제조해 진짜 보석과 조합해 다양한 액세서리를 디자인하였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인조 진주 목걸이로, 여러 줄을 드리워 우아한 모습을 연출하였다. 샤넬은 다양한 액세서리 디자인을 통해 그녀의 단순한 의상 디자인에 화려함을 부여하였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이전 의상 자체에 나타난 화려함이 샤넬의 디자인에서는 단순한 의상과 화려한 액세서리로 분리되어 나타나, 다양한 조합에 의한 장식이 가능하도록 재배열되었다고 해석하였다.

여성성을 강조한 로맨틱 스타일의 소개

단순하고 기능적인 1920년대 디자인에서 벗어나, 1930년대에 샤넬은 레이스나 망사류인 튤(tulle) 소재를 이용해 여성의 몸에 꼭 맞고 긴 치마가 달린 일명 ‘로맨틱’한 분위기의 의상들을 발표하였다. 특히, 1939년에 발표한 와토 슈트(Watteau suit)는 18세기 화가 와토(Watteau)의 회화에 등장한 여성들의 의상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의상으로 잘록한 허리와 넓은 스커트로 구성되어 1947년 디오르(Dior)에 의해 발표된 뉴 룩(New Look)과 유사한 모습이었다. 남성복 요소나 하류층 복식 요소의 도입 등 기존의 사고를 뒤집었던 샤넬의 이전 의상들과는 성격이 다른 1930년대 샤넬의 디자인에 대해, 스틸(Valerie Steele)은 ‘안정적이고 부르주아적이기까지 하였다’고 평가하였다.

망명생활과 패션계 복귀

샤넬은 1939년 2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함께 쿠튀르 하우스를 닫고 프랑스 남부로 피신하였다. 파리가 나치의 손에 넘어간 상황에서 샤넬은 독일군 장교와 교제하였고, 나치에 적극 협력해 그녀의 옛 애인인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친구인 처칠(Winston Churchill)의 마음을 움직이려 했던 공작에 적극 가담하였다. 종전 후 샤넬의 이러한 행위가 밝혀지면서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샤넬은 배신자로 낙인 찍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스위스에서 망명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샤넬은 오랜 망명생활을 접고 파리로 돌아와 1954년 새 컬렉션을 발표하였다. 당시에는 디오르와 발렌시아가(Balenciaga)와 같은 남성 디자이너들에 의해 다양한 스타일이 유행하고 있었고, 샤넬은 이들 남성 디자이너들이 여성의 인체나 활동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여성의 활동을 제한하는 디자인을 소개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샤넬은 이들 디자인에 맞서, 1920년대에 스웨터의 모습에 가깝던 저지 카디건 슈트(cardigan suit)를 박시(boxy)하게 다듬은 편안한 스타일의 카디건 슈트를 발표하였다. 샤넬의 컬렉션은 파리에서 예전의 디자인과 차이가 거의 없다는 혹평을 받은 반면, 미국에서는 그녀의 실용적이고 모던한 스타일의 재탄생에 박수를 보냈다.

이 외에도 샤넬은 1950년대에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체인 손잡이가 달린 핸드백과 앞부분을 검은 가죽으로 대어 오염을 방지한 슬링 백(sling backs)을 발표하였다. 이 액세서리들은 이미 1920년대에 소개했던 누빈(quilted) 핸드백의 변형이거나, 기존 남성용 신발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이었다. 이후 샤넬은 1960년대에 등장한 미니스커트의 열풍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스커트 길이 줄이기를 거부하였다. 이러한 샤넬의 태도는 사회적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의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던 그녀의 초창기 모습과 대조를 이루면서,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에 의해 후기 샤넬 디자인의 한계로 지적되었다. 하지만, 샤넬은 패션계에 복귀해 세상을 떠난 1971년까지 패션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며 샤넬 슈트를 클래식한 스타일로 정착시켰다. 샤넬의 본인 디자인의 영속성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은 “나는 사람들이 샤넬 모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샤넬은 스타일이다. 모드는 시간이 지나면 유행이 지나간다. [하지만] 스타일은 그렇지 않다”라는 그녀의 말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녀의 디자인 하우스는 1983년 이후 라거펠트의 지휘 아래 샤넬 본래의 스타일에 새로운 요소를 접목해 가며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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