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사의 승무원으로 일하는 나,
그런 내게도 가장 듣기 싫은 영어가 있다.
바로 “너 혹시 그거 기억하니?
Do you remember”로 시작되는 문장들
“어렸을 때 유행했던 애니메이션인데…”
“그때 그 광고 엄청 재밌었지”
한국에서 왔기 때문에 잘 모른다고 하면,
흐르는 그 찰나의 어색함
모든 사람이 웃고 떠들고 공감하는데
나만 외톨이가 된 것 같은 기분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렇게나 어렵다.
하나의 언어 안에는 이 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모든 과정이 총체로서 자리 잡고 있기 때문
자책도 많이 했다.
이 나라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사람이
여전히 모르는 단어가 당황스럽고,
식사 주문도 부담스러우며,
내가 기억할 수 없는 과거의 추억 앞에서는
나체라도 된 것처럼 한없이 무너져 내렸으니…
몇 년이 지난 지금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까?
천만에.
사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영어 실력도 그다지 나아진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스스로 자책하는 것은 그만뒀다.
내 잘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상대방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다시 천천히, 크고 또렷하게 말하면 되는 일이고,
상대방의 말을 못 알아 들었다면 그저
내가 영어를 잘 못 하니 다시 말해달라고 하면 될 일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언젠가는
영어가 편해질 날이 올까?
먼 훗날, 이곳에서의 추억이 함께 자란 후에는
‘기억나니’라는 문장이 싫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꿈 같은 날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
그 날을 상상하며 이 낯선 눈동자의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할 뿐이다.
출처_그저 나이기만 하면 돼_노경원_거인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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